[한마당-고승욱] 노들섬
서울에 있는 섬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저 한강에 솟은 모래더미에 불과하지만 도도한 물줄기에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근대화 과정에서는 무자비한 기계를 상대하면서 아예 지도에서 없어지기도 했다.
중랑천과 만나는 성수대교와 동호대교 사이에서 한강은 폭이 넓어진다. 그곳에 있던 섬이 저자도다. 중랑천을 타고 내려온 모래가 쌓여 생긴 섬이다. 갈대와 억새가 무성해 조선시대 왕족의 여름 정자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모래를 모두 퍼갔다. 한강 수위가 낮아지는 봄철에는 모래톱이 살짝 보이면서 자연의 위대한 재생력을 보여준다.
1925년에 일어난 을축년 대홍수는 한강의 물길을 크게 바꿨다. 강북에 있던 잠실이 이때 강남으로 갔다. 지금의 석촌호수로 돌던 물줄기가 쭉 펴지면서 여의도보다 넓은 섬이었던 잠실이 강남 육지와 연결됐다. 잠실섬 옆에 있던 부리도는 1971년 시작된 잠실공유수면 매립 공사로 형태는 물론이고 이름마저 사라졌다. 그때 토지 보상을 받고 떠난 잠실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신천이다.
사람들은 없던 섬을 만들기도 했다. 조선시대 지도에는 선유도가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선유봉이 그려져 있다. 당시에는 섬이 아니라 산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제가 근처 한강에 둑을 쌓으면서 선유봉에 채석장을 만들었다. 해방이 된 뒤에는 미군이 도로를 건설한다면서 일제가 만든 채석장에서 계속 돌을 캤다. 1960년대에는 서울시가 산이 모두 깎인 평평한 땅에서 모래를 퍼내 결국 선유도가 생겼다. 지금 선유도에 흔적만 남은 정수장은 1978년 구로공단에 식수를 공급하려고 서울시가 지은 것이다.
제1한강교(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도 원래는 강변에 있던 모래언덕이었다. 100년 전인 1917년 일제가 인도교를 놓으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용산팔경이었던 노들강변 봄버들은 노랫말로만 남았다. 그래도 노들섬은 운이 좋은 편이다. 아파트나 정수장 대신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옛날 모습 그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푸르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201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