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현 노들섬 총괄계획가
“노들꿈섬, 도시의 천년을 내다보는 꿈과 희망의 그림”
제안자의 독창적 기획 아이디어로 첫 운영체계 확립할 것
기존의 현상설계ㆍ위탁운영ㆍ민간투자 아닌 새로운 방식
시민참여로 완성되는 네버랜드…주제어는 ‘시민’과 ‘역사’
■도시의 섬
그곳에 섬이 있다, 서울 한복판에.
전차가 다니던 시절의 이름은 중지도(中之島)였다. 우리 기억 속의 그 섬은 조금씩 모습이 다르다. 강수욕을 즐기던 백사장, 연인들의 한적한 데이트 장소, 국군의 날 행진행렬이 통과해야 하는 곳, 서울불꽃놀이 축제가 열리면 갑자기 발 디딜 틈이 없어지는 그 섬, 지금 그 섬의 이름은 노들섬이다.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도시의 섬’은 고립된 초현실의 상투적 표현이다. 노들섬은 그 표현에 꼭 맞게 서울 복판에 있지만 멀리서 바라보고 스쳐 지나가는 섬이다. 도시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석양과 원초적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비일상적인 풍경, 때로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노들섬이다.
■한강예술섬1
노들섬은 사유지였다. 2005년 서울시는 이 섬을 매입하여 문화단지로 조성하려 계획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3차례의 현상공모가 있었다. 오페라극장, 청소년음악당, 미술관 등을 포함한 한강예술섬 사업의 구체적 모습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경제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을 벗어나 이제 우리에게 문화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회적 변화를 증명하는 기념비적 사업이었다.
음악과 미술은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그래서 음악당도 미술관도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노들섬은 여전히 도시의 섬이다.
시민들의 일상접근이 가능하려면 교통기반시설이 추가되어야 했다.
섬으로 연결되는 교통시설확보 예산은 참으로 막대한 금액이었다. 한강예술섬 사업은 시설투자비로 6천억원이 넘는 비용이 추산되었다. 게다가 접근이 어려운 공공문화시설은 당연히 운영이 어렵다. 운영지속성이 부족한 공공시설은 결국 초기 시설투자비용 외에도 지속적인 운영비 보조를 요구한다.
공공문화시설은 도시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주변을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도시구조를 개편하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시민들에게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보상을 확대 재생산해서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문화시설은 도심에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대학로를 변화시킨 아르코미술관, 북촌을 바꾸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사례가 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숲 속에 혼자 서있는 대형문화시설의 부정적 교훈도 있다.
그러나 섬은 숲보다도 더 먼 곳이었다.
■한강예술섬2
2천억원 정도의 기금이 마련되어 있는 사업이어서 일단 착수는 가능했다.
그러나 2010년 서울시 전체의 예산 부족문제가 대두되면서 ‘노들섬예술센터 건립기금 조례’가 폐지되고 기금은 서울시 부채 축소 등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시의회에서는 ‘한강예술섬 설립운영에 관한 조례’도 폐지했다. 실질적 사업추진 동력과 근거가 사라지면서 한강예술섬사업은 중단되었다.
현장조사와 설계비 등에 집행된 약 277억원의 재원 일부는 매몰되었다.
매몰비용 복구를 위해 사업재개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매몰비용이 아니고 추가예산이다. 계속 투입되어야 할 기회비용은 다시 매몰비용이 될 수 있고 다시 이를 살리기 위해 끝없이 운영비 보조가 이어져야 할 수도 있다. 시민의 혜안과 동의가 필요한 중요한 사안이었다.
2013년 서울연구원은 ‘노들섬 활용에 대한 전문가 의견 조사 연구’를 수행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문화시설 건립을 반대하지 않았다. ‘노들섬 내 대규모 문화시설 건립’ 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노들섬 자체는 잠재적 가치가 큰 공간이니 방치하지는 말고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충분한 논의과정을 위해 노들섬 포럼이 구성되고 다양한 시민 의견수렴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의견수렴 과정으로 서울시는 온라인 여론조사, 학생 디자인캠프, 시민 아이디어공모전, 국내?외 전문가 아이디어 스케치 전시, 시민토론회 등을 개최했다. 다양하고 가치 있는 의견과 제안들을 정리한 결과, 노들섬의 조성방향은 두 가지의 가치로 수렴될 수 있었다.
시민 모두가 언제나 함께 가꾸고 즐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단계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축약하면 주제어는 ‘시민과 역사’로 수렴된다.
■시민의 꿈
화산남한수북 천년승지
광통교, 운종가 건나드러
낙락장송 정정고백, 추상오부
위 만고청풍ㅅ경(景) 긔엇더하니 잇고
권근의 ‘상대별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조선 개국 초기 한양 복판인 청계천 광통교에서 도시의 천년을 내다보는 꿈과 희망의 그림이 여기 그려져 있다.
서울은 여전히 그런 곳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미래를 함께 꿈꾸고 만들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서울에 담고 그런 사회가 서울을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하지만 서울에 현실과 타협과 좌절에 의한 불만의 공간이 혼재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초현실의 공간, ‘도시의 섬’은 다른 공간이다.
지금 서울의 복판인 한강 노들섬은 우리의 꿈을 그려낼 수 있는 공간, 노들꿈섬이 되고자 한다.
차별받던 서자 홍길동이 건립한 율도국(栗島國)이나 가난한 선비 허생이 꿈꾸던 빈 섬(空島)도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피터팬의 네버랜드(Neverland)도 그런 섬이었을 것이다.
이 섬에 여전히 필요한 주제는 ‘시민과 역사’다.
◇시 민 = 사회가 시민이 모여서 이루는 집단이라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그것은 사회체계 혹은 운영체계를 지칭한다.
노들꿈섬은 창조적 제안자의 독창적인 기획 아이디어로 첫 운영체계가 확립될 것이다. 이 섬의 운영체계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시민사회가 어떤 것일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이 부각되어야 한다.
그러나 섬을 완성하는 것은 시민의 참여다. 어떤 방식으로 시민이 그 사회의 완성에 참여하고 섬의 모습을 갖춰나갈지를 서술하는 정교한 룰과 시나리오가 포함되어야 한다.
◇역 사 = 사회와 도시는 위대한 엘리트에 의해 완결되지 않으며 완성되는 순간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 섬에 다음 세대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그들의 흔적을 퇴적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노들꿈섬은 시민의 경험과 기억이 적층되는 곳이어야 한다. 그 기획의 실현에 필요한 공간 및 첫 시설 구상은 적정한 규모로 시작하여야 한다. 그리고 후대 시민의 행태와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그들의 공간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계획을 배경에 깔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공모
민주사회는 결론이 담는 가치를 판단하기보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가치를 판단한다. 건강한 사회는 치열한 경쟁과 공정한 판정을 통해 유지되고 발전한다. 그러한 경쟁과 판정의 제도적 장치가 공모전이다. 노들꿈섬의 미래 모습도 공모를 통해 선정될 것이다.
노들꿈섬 운영기획안, 공간계획안, 그리고 최초 운영자가 모두 공모를 통해 선정될 것이다. 이 공모는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구조물이 아니라 가장 민주적 과정이라는 기념비를 얻고자 한다.
이 사업은 노들섬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안부터 공모를 통해 결정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물론 그 기획안은 우리의 꿈을 투영한 것이되 현실공간에서의 실천가능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공모전이 기존의 ‘건축현상공모’ 방식과 다른 점은 섬의 기획과 운영방식에 대한 공모가 선행된다는 점이다. 필요한 시설의 성격과 규모는 그 결과에 의해 제시될 것이다.
이 공모전이 기존의 ‘위탁운영자선정공모’ 방식과 다른 점은 구조물을 먼저 지어놓고 제 3의 운영자를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기획에 의해 운영방식이 결정되고 그 결과에 맞춰 구조물이 지어질 것이며 그 제안자에게 운영을 맡길 것이다. 선정된 기획안이 구조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건물이 지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공모전이 기존의 ‘사업자투자공모’ 방식과 다른 점은 서울시 재원으로 필요한 시설과 공간을 조성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익사업을 통해 투자비를 회수해야 하는 사업자가 아니라 적정운영비 회수와 공익가치실현의 균형을 잡으며 시민과 역사에 대해 책임의식이 있는 운영자가 선택될 것이다.
■노들꿈섬 공모
노들꿈섬 공모는 1차 운영구상공모, 2차 운영계획‧시설구상공모 그리고 3차 공간‧시설조성 공모로 나누어 진행된다.
이 공모전은 유연하게 변하면서 시대의 흔적과 퇴적을 담을 수 있는 운영전략과 이를 담을 수 있는 공간과 시설조성 설계안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완의 계획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섬 전체의 기반시설과 필요한 시설이 추가 사업이 없을 경우에도 충분한 완성도를 갖추고 작동할 수 있는 계획안이어야 한다.
노들꿈섬은 우리의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 과정과 결과, 가치와 형식의 모든 것이 우리 시대가 펴 보이는 야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거기 세워진 특정한 구조물이나 섬의 일부분이 아니라 섬 전체가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후대에 평가받기를 기대한다. 이 공모전의 진정한 심사위원은 다음 세대의 시민들이 될 것이다.
◇1차 ‘운영구상’ 공모 = 1차 공모는 우리 시대의 허균이나 박지원, 혹은 홍길동이나 허생의 상상력이 필요한 공모단계다. 다음 단계인 운영계획‧시설구상공모에 진출하기 위한 복수의 기획안이 선정될 것이다.
1차 공모의 목적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획안을 뽑는 데 있다. 이 단계는 우리가 어떤 사회의 꿈을 그리고 그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이 섬에서 구현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우리 사회가 특정한 직업의 종사자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인문, 사회, 환경 등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 그리고 그들의 협력조직에게 열려있다.
◇2차 ‘운영계획‧시설구상’ 공모 = 2차 공모는 1차 운영구상 공모에서 선정된 복수의 기획안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가장 탁월하고도 실현가능한 안과 이를 운영할 운영자를 선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노들섬의 가치를 발굴하고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 현실적으로 작동가능한 조직체계, 재정계획이 제시되어야 한다. 준공 이후의 서울시 재정투입은 없거나 최소화되어야 하므로 재정적으로 자족적이며 지속가능한 기획과 운영방안임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본적인 공간이용 구상방안도 검토,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조직력과 재정관리능력을 갖춘 주체가 선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노들꿈섬의 첫 운영자가 될 것이고 노들꿈섬의운영전략을 기본으로 3차 공모의 지침이 작성될 것이다.
◇3차’ 공간‧시설조성’ 공모 = 3차 공모는 건축, 조경, 도시분야 전문가가 참여하여 진행하는 전통적인 현상공모 형식이다.
운영계획‧시설구상공모에서 당선된 운영전략을 실현하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이용계획이면서 우리가 도시에서 요구하는 경관기대수준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설계안을 선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회적 상상력을 공간적 상상력으로 번역해낸 가장 탁월한 계획안이 당선안으로 결정되고 그 설계에 의해 노들섬이 조성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노들꿈섬이 될 것이다.
글= 서 현 (서울 노들섬 MP(Master Planner),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한국건설신문, 2015년 6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