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의 꿈
박양수 전국부 부장
한강대교를 반쯤 지나가다 보면 다리 양쪽으로 길쭉하게 나와 있는 섬이 노들섬(중지도)이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데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만, 1960년대만 해도 가난한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인기를 끌던 곳이다. 원래는 동부이촌동과 서부이촌동에서 노들섬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모래벌판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이후 모래언덕 가운데 하나가 노들섬이 됐다고 한다. 노들섬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도시 성장과 경제 도약기를 거치는 50여 년간 사실상 자연 그대로 방치돼 왔다. 선착장을 포함한 종합유원지 개발계획, 호텔이 들어선 대규모 종합관광타운 계획이 그려졌지만 노들섬이 갖는 공공성이 민간 개발의 발목을 잡았다. 노들섬은 시민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갔다.
2004년 서울시가 사유지였던 노들섬을 237억 원에 매입하면서 ‘한강예술섬’의 그림이 그려졌다.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등을 갖춘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건설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했다. 다만 오페라하우스 국제건축공모전 당선안들이 60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시설투자비를 필요로 한다는 게 문제였다. ‘도시의 섬’에 접근하기 위한 교통기반 시설 확보에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규모 부채에 시달리던 시가 빚을 갚기 위해 확보해놓은 ‘한강예술섬’ 건립 기금마저 폐지했고, 노들섬은 ‘고립된 섬’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잠잠해지는 것 같던 노들섬 재생사업을 깨운 것은 지난해 채택된 총사업비 500억 원 규모의 ‘노들섬 문화명소화 조성사업’이다. 노들섬 문화명소화 조성사업은 3차례 진행된 ‘노들꿈섬 공모전’부터 모든 게 기존 방식을 뒤엎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서울시는 1차 운영 구상부터 2차 운영 계획, 3차 공간·시설 조성까지 전 과정을 시민공모로 결정했다. 기존 방식과 달리 구조물을 지어놓고 운영자를 선정하는 게 아니라, 먼저 섬의 기획과 운영방식을 결정한 뒤 그 결과에 맞춰 구조물을 짓고 그 제안자에게 운영을 맡기기로 했다. 선정된 기획안이 구조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굳이 건물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1, 2차에 걸친 운영구상 및 운영계획 공모에서 운영팀으로 최종 선정된 ‘어반트랜스포머’(대표 김정빈 서울시립대 교수)는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체들의 힘을 모으는 플랫폼이자 그 중추적 역할을 하는 예술창작기지 ‘밴드오브노을’을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기존의 사업자투자 공모 방식이 아니라 서울시 재원으로 필요시설과 공간물을 조성한다는 것. 따라서 서울시도 투자비 회수를 극대화해야 하는 사업자가 아니라 수익과 공익가치 실현의 균형을 잡는 책임 있는 운영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파격적인 도시개발 공모방식은 우리에겐 아직 생소하지만 최근 유럽에서 선보인 바 있다. 2014년 11월 파리 최초의 여성 시장인 안 이달고와 장 루이 미시카 부시장 주도하에 시작된 ‘파리 재창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때마침 오는 15일 한강 노들섬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노들장터’가 열린다고 한다. 주말을 이용해 ‘자립적 운영’과 ‘공공성 달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 노들섬의 새로운 꿈꾸기에 동참하고, 그 성공 가능성을 미리 엿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6.10.14